대답 없이 걷기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걷는 일에도 목적을 붙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기분을 바꾸기 위해,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책마저 실패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기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을 지나고, 신호를 두 번 건너고, 이름 모를 나무 아래에서 잠깐 멈췄다. 돌아왔을 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다리는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움직였다. 마음이 따라오지 못하는 날에는 몸이 먼저 하루를 건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